"먹고 살기 힘드니까 애를 낳지 않으려 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그게 불법낙태니까 문제지!"
그렇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애를 임신하면, 무조건 낳는 것이 미덕인 시대였다. 그러나 경제위기 앞에서 임신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같은 의미로 피임기구에 대해 설명하자면...
막장이 된 경제, 무기력한 가정 속에서 학생들은 그들만의 탈출구로 서로의 몸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런 연구는 미국이란 나라가 그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물론, 섹스까지 이어진 사례는 적었지만(이때까지도 처녀성에 대한 보수성이 남아있었다), 학생들의 성적유희...그러니까 키스와 애무는 부모세대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바로 미국 '프리섹스 신화'의 시작이 된 것이다.
대공황이라는 국가적 경제위기가 사람들의 성생활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걸 보면, 역시 인간에게 있어 돈은 단순한 '통화'이상의 가치를 지닌 존재인가 보다.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콘돔이란 물건에 대한 미국 남성들의 생각이란건,
"부인이 아닌 여자랑 섹스 할 때 쓰는 물건."
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렇기에 아내와의 섹스에서 콘돔을 쓴다는 건 당시로서는 문화적 충격과도 같은 일이었다. 여기에 더해 여성들(특히 가정주부들)이 피임약이나 피임기구에 접근했다는 것도 보통 용기로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만큼 대공황은 사람들의 섹스라이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공황이 연령대별로 상반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너나할 거 없이 섹스를 피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더라도 안전한 섹스를 찾았다면, 반대로 아이들에게 대공황은 섹스를 즐길 수 있게 한 산타클로스와 같은 존재였다.
"찰스, 너 계속 학교 다닐 거야?"
"응, 뭐 사회 나간다고 취직 된다는 보장도 없고...고등학교나 마치게."
"하긴, 경기가 막장인데 지금 나가봤자 백수 소리나 듣지. 나도 고등학교나 마쳐야겠다."
사회에 나와도 취직이 된다는 보장이 없자.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는 대신 안정된 학교를 택하게 된다. 오늘날 취직 대신 대학원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는데, 당시 기준으로 보면 대도시 빈민가의 하층민 자식들은 초등학교...잘하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로 뛰어드는 것이 평균적인 모습이었으나 사회에 나와도 취직을 자신 할 수 없게 되자 그대로 학교에 눌러 앉게 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학교에서는 색다른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데...
"제인, 너 오늘따라 섹시하게 보인다."
"원래부터 섹시했어."
"그래? 내가 네 섹시함을 잘 느끼지 못 했나 본데, 지금부터 찐하게 네 섹시함을 연구해 보는 게 어떨까?"
"연구하는 건 좋은데, 삽입은 안 돼."
"그럼, 연구는 어디까지나 생태 보호 차원에서 이뤄져야지. 천연기념물은 꼭 지켜야지. 내가 또 자연보호에는 일가견이 있잖아?"
댓글 없음:
댓글 쓰기